[망한래퍼열전] 3. Ras Kass 멸종위기에 처한 비운의 음유시인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 속한 작은 도시 카슨. 그곳의 후드, 게토에서 범죄에 익숙한 삶을 살아왔던 청년 John R. Austin 4세는 마음을 다잡고 랩게임에 몸을 던졌다. Ras Kass라는 랩네임으로 다시 태어난 그는 거리와 인종차별, 생존을 위해 피할 수 없는 범죄행위와 감옥에서 있었던 일을 촘촘한 라임과 함께 풀어냈고, 첫 인디펜던트 싱글이 발매와 동시에 The Source Magazine에 메인 기사로 실리며 씬의 주목을 한몸에 받게 된다. 타고난 스토리텔러, 감각적인 프리스타일 엠씨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고 Nas, Chino XL 등의 거물들의 샤라웃에 그는 곧장 웨스트 코스트의 대형 레이블인 Priority Records와 계약을 체결한다.
Ras Kass의 첫 메이저 데뷔작인 Soul on Ice는 지금도 회자되는 골든에라 클래식 앨범으로 유기적인 사운드, 풍부한 스펙트럼과 흠잡을 곳 없는 랩이 어우러진 명작. 이 음반은 1996년 "Nas에 대한 웨스트 코스트의 답변"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이에 흡족한 Priority Records는 그를 더욱 유명한 래퍼로 만들려고 했고, 1집보다 조금 더 대중친화적인 프로덕션과 호화로운 피처링 게스트가 동원된 2집 Rasassination 또한 소포모어 징크스 없이 흥행에 성공한다.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전작대비 100위가 넘는 순위상승. MTV를 통해 전세계로 송출되는 리드싱글 Ghetto Fabulous의 뮤직비디오 속 Ras Kass에게선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상남자의 면모가 느껴졌다. 그의 온몸을 휘감은 "So Fresh"한 골드체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운 은팔찌로 바뀌게 될 줄 그때 당시 누가 알았을까. Ras Kass가 망한다고? 과장 조금 보태서 노스트라다무스도 몰랐을 거다.
첫번째 삐끗은 위에서부터 시작됐다. Capitol Records가 Priority Records를 인수합병하면서 어떻게 된 영문인지 Ras Kass에 대한 서포트가 엉망진창이 되기 시작한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어쨌든 3집 Van Gogh를 준비하는 동안 공식적인 프로모션이 시작되기도 전에 리드싱글이 유출되고, 불법복제 테이프가 돌아다니는 등 시작부터 나사가 여러개 빠진 모양새를 보여주었다. 심지어 레이블이 관여하는 TV 드라마에 아직 발매도 되지 않는 미발매 싱글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일까지 발생하자 결국 Ras Kass 역시 참지 못하고 레이블을 디스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웨스트 코스트에서 촉망 받는 힙합 뮤지션이었고 DJ Premier, Hi-Tek, Rockwilder, Battlecat, 그리고 Dr. Dre까지 Ras Kass를 지원하고 비트를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
악재가 여기서 끝났더라면 Ras Kass는 망한래퍼열전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는 없다는 말처럼 가속도가 붙은 불행은 대체 밑바닥이 어딘지도 모를 정도로 그를 몰아붙였다. 새로운 리드싱글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Ras Kass는 Priority Records와 끝없이 대립하여 앨범 발매일은 연기됐고, 설상가상으로 그는 상습적인 음주운전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녹음작업 마무리를 위해 탈주하는 정신 나간 짓을 저지르고 만다. Priority Records는 그래도 옛정이 남아있었는지 형 집행 2주 전에 Ras Kass를 제명하지 않기로 공식성명을 냈고, 도망자 신세가 된 그는 탈주 중에 마스터 CD를 손에 넣고 녹음을 마쳤다.
이후 그는 경찰에 자수해 곧장 감옥으로 직행했고 그 사이 Priority Records는 Ras Kass의 앨범에 수록되었어야 할 Alchemist의 비트를 Jadakiss에게 되팔았는데, 이는 복역을 마치고 가석방으로 출소한 Ras Kass가 레이블을 한층 더 불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Priority/Capitol Records는 계약서에 적힌 '세 장의 음반을 추가 발매' 조항을 들이밀며 그를 놓아주지 않았고, 2007년 10월까지 믹스테이프 형식의 음반을 세 장 발매하고나서야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분명 Ras Kass는 웨스트 코스트의 OG이자 능력 있는 래퍼였기에 Def Jam, G-Unit Records는 그와의 계약을 원했다.
Ras Kass는 어느 레이블과 계약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며 BET Awards로 향했지만, 아뿔싸! 여기서 잠시 1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2006년 로스앤젤레스의 어느 클럽에서 Ras Kass는 The Game 패거리와 싸움을 벌이고 해가 바뀔 때까지 몇차례 디스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보호관찰 및 가석방 처분 위반으로 판결되면서 그는 또 다시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랩게임은 1년만 지나도 트렌드가 확 바뀌는 씬이고 00년대에서 중요한 시기마다 감옥에 있었던 그에겐 이제 그 누구도 OG, 전설 따위의 수식어를 붙여주지 않게 되었다. 슬프게도, Ras Kass는 망한 래퍼가 되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일까? 그러기엔 Ras Kass는 힙합을 너무 사랑했고 랩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음악의 신으로 재기에 성공한 이상민보다 2년 빠른 2010년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웹예능 Save the Ras Kass를 방송하기 시작하며 그때 당시론 유례를 찾기 어려운 특이한 마케팅을 시작한다. 이 프로그램은 멸종위기에 처한 음유시인, 비운의 천재 엠씨 Ras Kass를 보호해야 한다며 그의 믹스테이프 Quarterly를 다운받아줄 것과 (여성 한정) 클럽이나 공연장에서 Ras Kass를 만날 시에 뜨거운 밤(...)을 보내줄 것을 간청한다. 5000달러가 없어서 믹스테이프를 실물음반으로 제작하지 못한다는 Ras Kass. 한 달에 20달러만 쓰면서 "RAPPERS ARE PEOPLE TOO"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는 Ras Kass. 그래도 진심은 통하는 법이었는지 2011년 그의 새 음반 제작을 위한 킥스타터는 5일만에 초과예산을 달성하며 성공한다.
Ras Kass의 공식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1만명 남짓 되고 조회수는 처참하다. 그는 여전히 (메이저 래퍼들이 입버릇처럼 조롱하곤 하는) 'Broke Ni**a'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분명 잊혀진 망한 래퍼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꾸준히 음반을 내고 랩을 멈추지 않는다. Ras Kass는 망했지만 행복하다. 레코드 회사 매니저도 교도소의 교도관도 그로부터 힙합을 빼앗아갈 순 없었으니. 그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오늘 잠시 시간을 내서 유튜브에 Ras Kass를 검색해보는 것도 썩 나쁜 생각은 아닐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DP_X_hFc0rI
https://www.youtube.com/watch?v=fBinvRHQX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