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래퍼열전] 2. Canibus 잘못된 때에, 잘못된 장소에, 잘못 온 사나이
여기 억세게 운이 나쁜 사나이가 있다.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데 시험날이면 유독 신경이 곤두서고, 빈 손으로 외출한 날이면 어김 없이 머리 위로 장대비가 쏟아지는 이 남자. Canibus는 여러 레이블, 프로듀서와의 잦은 불화 그리고 다른 래퍼와 수시로 마찰을 일으키며 다사다난한 커리어를 보냈다. 빌보드 앨범차트 2위로 골드인증까지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정작 평단과 매니아층은 비트가 랩을 못 따라간다며 비평을 쏟아냈다. Wyclef Jean의 (코닥 블랙 톤으로) Sorry Ass Beat 때문에 훌륭한 랩실력이 가려진다는 얘기였다. Canibus도 이에 동의했는지 차기작인 2000 B.C. (Before Can-I-Bus)에선 큰 변화가 있을 것을 예고한다. 그건 바로 Wyclef Jean에 대한 디스였다.
Canibus는 분명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2집 음반에 대해 Wyclef와 상의하거나, 아니면 소속 레이블인 Universal Music Group 담당자에게 자문을 구한다거나. 하지만 그는 래퍼라면 랩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디스를 내다 꽂았다. LL Cool J에게 했던 것처럼. 그리고 Eminem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결과가 어땠냐면 당연히 망했다. 음악적으로 전작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대신 차트에서 그야말로 떡락을 해버렸고, 레이블과의 관계도 험악해져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인디펜던트 레이블을 떠돌게 되었다. 억세게 운이 없는 이 남자. 근데 뒷사정을 알고 보면 사실 어느 정도 본인탓이 없진 않아 보인다.
국내에선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져서인지 Eminem과의 비프에서 뚜까 맞고 사라진 흔한 래퍼 A로 인식하는 이들이 종종 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Canibus의 랩스킬은 결코 허세나 허풍이 아니며 Em과의 비프에서 만큼은 Canibus가 이겼다고 보는 의견도 더러 있다. 그는 한 번의 비프 때문에 망한 건 결코 아니지만, 문제는 필요이상으로 주변에 많은 적들을 만들고 또 원한관계를 지나치게 오래 유지했다는 점이다.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Phuk U부터 Air Strike (Pop Killer)까지. 그는 Em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을 10년 동안 멈추지 않았다. 경력을 다져야 할 초창기에 굳이 앨범 수록곡을 낭비해가며 디스곡을 여러개 발표하는 건 그다지 현명한 전략이라고 볼 수 없다. 특히 앨범의 9할 이상을 Eminem 까기에 낭비한 2001년작 C! True Hollywood Stories 같은 음반은 더더욱 그렇다. Rip the Jacker라는 걸출한 명반을 낸 사람의 작품이라기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완성도, 앨범 크레딧에 Prod. by Stan/Prod. by Stanibus 같은 짜치는 농담을 끄적이며 낄낄대는 Canibus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정말 끔찍하다. 왜 좋은 재료와 도구를 가지고 똥을 만드는 거지? 뭐 어떤 의미에선 이것 또한 Real Shit이긴 하다만.
이러고 다니다 보니 앞서 말한 Rip the Jacker, 그리고 2002년작 Mic Club: The Curriculum 정도를 제외하면 그는 탄탄한 랩을 뒷받침해줄 양질의 비트, 안정적인 프로모션을 지원받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레이블과의 계약 때문에 2001년에 녹음하고 2005년에 발매한 Mind Control, 그리고 Nottz와의 불화(* Canibus의 매니저인 Louis Lombard III이 Nottz의 곡들을 유출시킴) 때문에 반쯤 갈아엎고 발매일까지 연기한 Hip-Hop for Sale까지. 심지어 어떤 트랙은 믹싱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있고 이는 상업적으로든 음악적으로든 씁쓸한 성적표로 다가왔다. 2007년에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For Whom the Beat Tolls를 발매하지만 그땐 이미 랩게임의 판도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 있는 상태였고.. 이 가련한 힙합씬의 존 맥클레인은 Eminem과 랩으로 다이다이 뜨고도 밀리지 않는 랩 실력을 가졌지만, 애석하게도 끝끝내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자, 그리고 여기서부턴 정말로 망한 래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2012년 Canibus는 Dizaster와의 랩배틀에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곤 뜬금없이 약 30페이지 가량의 가사지를 뭉탱이로 가져와 그걸 보면서 랩을 이어나갔다. "이런 걸 하면 안 된다는 규칙 같은 건 없잖아"라며. 이 사건 이후 인터넷과 SNS에서는 리스너들 뿐만 아니라 Talib Kweli, Alchemist, Freeddie Gibbs, J-Ro, Luckyiam, Saigon, Phonte 등의 플레이어들이 직접 Canibus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그는 Eminem과의 비프로 망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자폭 스위치를 눌렀다.
놀랍게도 Canibus는 여전히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는 여전히 높은 수준의 어휘력과 기막힌 박자감각, 그리고 적재적소에 라임을 배치하는 플로우 디자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 부디 그가 남은 경력 동안 더이상 적을 만들지 않고 영건들에게 귀감이 되는 OG가 되길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https://www.youtube.com/watch?v=VZVMvxYQgdc